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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사망원인, 나이와 키는? 가슴아픈 역사

행복한 플라비 2020. 11. 9.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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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살펴볼 "유관순" 열사는 향년 17세의 나이로 순국한 우리나라의 아픈역사를 대변하는 인물중 한분이십니다. 

151.5cm의 작은키의 소녀가 하늘의 별이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902년 충청남도 목천군 이동면 지령리  에서 유중권[柳重權]의 3남 2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공주 영명학당에서 수학하다 1916년 아메리카인 "여성" 감리교회 선교사 사애리시[史愛理施]   부인의 권유로, 서울의 이화학당 보통과 3학년에 교비생  으로 편입학했습니다. 그때 이화학당은 다수의 학생들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교였고, 집이 멀었던 "유관순"도 기숙사에 살며 스터디하게 되었는데요.

"유관순"이 이화학당 고등과 1학년에 진급한 1919년, 3 . 1  운동이 출발되었는데요.   교장 룰루 프라이  는 학생들의 안전을 염려하여 참가를 말렸지만, 학생들은 학당의 담을 뛰어너무어 참가했습니다. 이 여파로 1919년 3월 10일에 전 학교에 휴교령이 떨어지자, 같이 이화학당을 다니던 사촌 언니인 유예도와 같이 [고향]인 천안으로 내려와 만세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그것이 3 . 1 운동 중 '천안 아우내 만세운동'[1919년 양력 4월 1일, 음력 3월 1일].  

이때 "유관순" 열사는 일본앞잡이 노릇을 한 친일파 조선인 정춘영에 의해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로 끌려가지요.




이후 1920년 9월 28일,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향년 17세의 젊은 나이로 옥사하였습니다. 이 부분이…얼마만큼 고문이 참혹했던지, 이화학당에서 시체를 반환할 것을 요구했을 그때 서대문 형무소에서 거부할 지경이었다는 소설가 있었답니다.  교장선생님이신 룰루 프라이는 "유관순"의 시신을 인도받아 장례를 치러주었는데요.




요즘 밝혀진 즉각는 "유관순"은 옥사도 아니고 아예 일본 헌병들에게 장살 당해 사망했다고 해요. 

다만 고문을 당하다 죽었는지, 아니면 고문 후유증으로 죽은 것인지, 

아니면 따로 죽인 것인지는 불확실해요... 

나라를 위해 빛내주신 유관순 열사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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